Research & Climbing
막 박사과정을 시작한 학생분들 중에 연구 주제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무래도, 어렵게 정한 박사과정을 시작하려다 보면, 뭔가 멋진 연구를 하고 싶은데, 이런 저런 연구 방향이 있고, 장단점도 있어 보이며, 같이 연구할 수 있는 지도 교수의 사정도 있다보니 쉽게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인생의 방향을 정할 것 같은 중요한 문제라 쉽사리 정하시지 못하는 것이지요.
저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장문의 이메일을 그 당시 제 지도교수님에게 쓴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받은 조언은 “별 상관 없다. 아무거나 해라.” 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당신에게는 별 상관 없다는 거냐…” 하는 생각도 들어서, 좀 속상하기도 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서 저도 지도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보니, 그 조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기 위해서, 비유를 하나 들까 합니다.
산타기입니다. 산자락에 서서, 어느 산을 탈까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자락에서 서서는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잘 안보일 분더라, 올라가는 길을 경험하지 않은 터에 오르는 길이 쉬울까 어려울까 미리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더 좋은 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이 산을 오를까 저 산을 오를까 산 자락 아래로 다니다 보면, 시간은 잘 가고, 제자리만 맴돌게 됩니다.
이 때에는 어느 산이든 한 번 올라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산 하나를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전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산의 높낮이도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산이란게 산맥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음 산봉우리로 오를려고 생각할 때, 맥을 타고 가면 산자락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봉우리까지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산정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또 고수들이 많아서, 듣는 조언의 퀄리티도 휠씬 좋습니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동안의 경험이 생기고, 체력이 향상되어서, 다음 산을 오를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훨씬 잘 알게 됩니다. 게다가, 산이란 다 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생겨서, 쓸데 없이 남의 떡이 커보이는 현상이 줄게 됩니다.
연구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래서, “별 상관 없다. 아무거나 해라.” 라는 조언이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경우에도 첫번째 투입된 연구는 제가 그닥 하고 싶은 연구도 아니었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배운 방법론들이 제 기초체력이 된 듯 합니다. 덕분에 다음 번 제 스스로의 연구를 할 때,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과 잘 맞는 연구란 것을 찾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거나 한 연구가 마지막 연구가 된다면 모를까, 앞으로 다른 연구를 더 하실 생각이시라면,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기 보다는, 한 연구를 끝내보는 것 (예컨대, 논문을 한 편 끝내보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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